[신문][사목일기] 탈리다쿰
경찰사목위원회 | 2003-05-18 | 조회 1414
평화신문 724 호 발행일 : 2003-5-18
“탈리다쿰”(아이야 일어나라)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에 사용하신 힘, 그 에너지를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하느님의 존재 방법이고 우리는 그 의미를 깨달아가면서 영적으로 성장한다. 잘 준비된 제대에서 미사를 봉헌했던 것과 달리 미사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미사드리고 경신실을 준비할 때에는 미사소도구부터 장식물 하나까지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 경험을 하면서 '보따리 사목'(?)의 진면목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그래서 주위에서 "왜 그리 바빠요?" 하는 게 늘 인사말처럼 됐다. 사실 '바쁨'이라는 단어는 나의 좀 덤벙대는 성격 때문에 그런지 "차분히 호흡을 하세요"라는 질타처럼 느껴져 괜시리 뜨끔했다. 그런데 내 '바쁨'을 신기한 열정으로 보는 분도 있다. "어떻게 그것을 다하며 지내요? 굉장한 에너지네요!" 세상사 모든 것은 양면성이 있어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다지만 내게 바쁨은 깊은 묵상 주제가 됐다.
어린시절 주로 증조할머니와 지내야 하는 시간이 많았던 나는 학교 갔다 오면, 당신이 드시지 않고 담아둔 간식을 주시거나, "배고프지?" 하시며 밥상을 차려 주시는 게 당연한 건 줄 알고 지냈다. 그리고 돌아가셨을 땐, 유품에서 내가 못쓰는 글씨로 쓴 생일카드나 꼼꼼히 버리지 않고 모아둔 비닐봉지 같은 것들을 보며 그냥 멍하게 슬프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 그분은 내게 슬픔으로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어떤 목적을 갖고 계획을 세워 나를 대하지는 않았지만, 증조할머니의 어린시절 '나'에 대한 무조건적 긍정은 내가 깊이 좌절하거나 실망할 때마다 일어날 수 있는 사랑의 씨앗이 된 것 같다. 그렇게 그분이 주신 선물이 삶에서 새롭게 비춰질 때마다 나는 하느님 안에서 깊은 일치를 체험한다.
얼마 전 '영성·인성·건강을 다루는 탈리다쿰' 프로그램 센터를 열며 은퇴노인경찰을 위한 경로당 프로그램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주위 분들이 젊은 신부가 청소년도 아니고 노인사목에 관심이 많다고 재미있어 한다. 그러나 사실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도 어린시절 할머니께서 전해주신 소중한 선물의 이끔인 것 같다.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이 무엇인지 모든 인간이 깨달을 수 있는 비밀을 숨겨두셨다. 그러나 너무 소중히 간직되어있기에 눈치를 못 채는 것 같다.
“주님, 주교님이 맡겨주신 경찰사목을 통해 제가 만나는 모든 분께 하느님 사랑의 씨앗을 전하는 도구가 되게해주십시오!”